문학132 똥차 안도현 똥차 안도현 두어 달에 한 번씩 학교에 똥차가 온다 햇볕이 변소 지붕에 골고루 널린 날을 택해 부릉부릉 운동장을 힘차게 질러온다 개도 안 먹는다는 선생 똥을 교과서나 공책 찢어 쓰윽 닦은 아이들 똥을 빨대로 콜라 빨 듯 시원히 바닥낸다 수업시간에도 냄새가 교실을 적시지만 우리 .. 2011. 5. 3. 낡은 자전거 안도현 낡은 자전거/ 안도현 너무 오랫동안 타고 다녀서 핸들이며 몸체며 페달이 온통 녹슨 내 자전거 혼자 힘으로는 땅에 버티고 설 수가 없어 담벽에 기대어 서 있구나 얼마나 많은 길을 바퀴에 감고 다녔느냐 눈 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길을 많이 알수록 삶은 여위어가는 것인가, 나는 생각한.. 2011. 5. 3. 접시꽃 당신/도종환 접시꽃 당신 도종환 옥수수잎에 빗방울이 나립니다 오늘도 또 하루를 살았습니다 낙엽이 지고 찬 바람이 부는 때까지 우리에게 남아 있는 날들은 참으로 짧습니다 아침이면 머리맡에 흔적 없이 빠진 머리칼이 쌓이듯 생명은 당신의 몸을 우수수 빠져나갑니다 씨앗들도 열매로 크기엔 아.. 2011. 4. 25. 문태준/가 재 미 가 재 미/문태준 김천의료원 6인실 302호에 산소마스크를 쓰고 암 투병 중인 그녀가 누워 있다 바닥에 바짝 엎드린 가재미처럼 그녀가 누워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나란히 한 마리 가재미로 눕는다 가재미가 가재미에게 눈길을 건네자 그녀가 울컥 눈 물을 쏟아낸다 한쪽 눈이 다른 한쪽 눈.. 2011. 4. 19. -맨발/문태준- -맨발/문태준- 어물전 개조개 한 마리가 움막 같은 몸 바깥으로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죽은 부처가 슬피우는 제자를 위해 관 밖으로 잠깐 발을 내밀어 보이듯이 맨발을 내밀어 보이고 있다. 펄과 물 속에 오래 담겨 있어 부르튼 맨발 내가 조문하듯 그 맨발을 건드리자 개조개는 최초.. 2011. 4. 19. 나를 위로하는 날/이해인 나를 위로하는 날 /이해인 가끔은 아주 가끔은 내가 나를 위로할 필요가 있네 큰일 아닌데도 세상이 끝난 것 같은 죽음을 맛볼 때 남에겐 채 드러나지 않은 나의 허물과 약점들이 나를 잠 못 들게 하고 누구에게도 얼굴을 보이고 싶지 않은 부끄러움에 문 닫고 숨고 싶을 때 괜찮아 괜찮아.. 2011. 4. 14.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5 /이정하 비 오는 간이역에서 밤열차를 탔다 4 /이정하 열차는 도착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떠나고 있었다. 역사의 낡은 목조 계단을 내려가며 그 삐걱이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내 생애가 그렇게 삐걱대는 소리를 들었다. 취하는 것도 괜찮겠다 싶어 마신 술이 잠시 내 발걸음을 비틀거리게 했지.. 2011. 4. 14. 길 가는 자의 노래/류시화 길 가는 자의 노래/류시화 집을 떠나 길 위에 서면 이름없는 풀들은 바람에 지고 사랑을 원하는 자와 사랑을 잃을까 염려하는 자를 나는 보았네 잠들면서까지 살아갈 것을 걱정하는 자와 죽으면서도 어떤 것을 붙잡고 있는 자를 나는 보았네 길은 또다른 길로 이어지고 집을 떠나 그 길 .. 2011. 4. 12. 거리에서 /류시화 거리에서 /류시화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사람들이 오가는 도시 한복판에서 모두가 타인인 곳에서 지하도 난간 옆에 새처럼 쭈그리고 앉아 한 남자가 울고 있다 아무도 그 남자가 우는 이유를 알지 못한다 그리고 아무도 그 눈물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 거리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 2011. 4. 12. 고슴도치 사랑/이정하 고슴도치 사랑/이정하 서로 가슴을 주어라. 그러나 소유하려고는 하지 말라. 소유하고자 하는 그 마음 때문에 고통이 생기나니. 추운 겨울날, 고슴도치 두 마리가 서로 사랑했네. 추위에 떠는 상대를 보다 못해 자신의 온기만이라도 전해 주려던 그들은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상처만 생.. 2011. 4. 12. 기쁨 찾는 기쁨/이해인 기쁨 찾는 기쁨 이해인 평범하고 단조로운 일상생활 안에서 권태나 우울에 빠져들다가도 재빨리 기쁜 쪽으로 방향을 돌릴 수 있는 슬기를 구하고 싶다 매일 보물찾기라고 하듯이 '기뻐할거리'를 찾는다면 불평의 습성도 차츰 달아나고 말테지 기쁨을 찾는 기쁨만으로도 나의 삶은 더욱 .. 2011. 4. 11. 희망의 바깥은 없다/도종환 희망의 바깥은 없다 글/도종환 희망의 바깥은 없다 새로운 것은 언제나 낡은 것들 속에서 싹튼다 얼고 시들어서 흙빛이 된 겨울 이파리 속에서 씀바귀 새 잎은 자란다 희망도 그렇게 쓰디쓴 향으로 제 속에서 자라는 것이다 지금 인간의 얼굴을 한 희망이 온다 가장 많이 고뇌하고 가장 .. 2011. 3. 31. 이전 1 ··· 4 5 6 7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