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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유명 시인의 시

고 은/호박꽃

by 이태일, 태라라 2012. 10. 22.
    호박꽃/고은 그동안 시인 33년 동안 나는 아름다움을 규정해왔다 그때마다 나는 서슴지 않고 이것은 아름다움이다 이것은 아름다움의 반역이다라고 규정해왔다 몇 개의 미학에 열중했다 그러나 아름다움이란 바로 그 미학 속에 있지 않았다 불을 끄지 않은 채 나는 잠들었다 아 내 지난날에 대한 공포여 나는 오늘부터 결코 아름다움을 규정하지 않을 것이다 규정하다니 규정하다니 아름다움을 어떻게 규정한단 말인가 긴 장마 때문에 호박넝쿨에 호박꽃이 피지 않았다 장마 뒤 나무나 늦게 호박꽃이 피어 그 안에 벌이 들어가 떨고 있고 그 밖에서 내가 떨고 있었다 아 삶으로 가득찬 호박꽃이여 아름다움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