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용운(1879-1944)
독립운동가, 승려, 시인
한용운의 좋은 시 모음
고적한 밤
하늘에는 달이 없고 땅에는 바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은 소리가 없고 나는 마음이 없습니다
우주는 죽음인가요
인생은 잠인가요
한 가닥은 눈썹에 걸치고 한 가닥은 작은 별에 걸쳤던 님
생각의 금실은 살살살 걷힙니다
한 손에는 황금의 탈을 들고 한 손으로 천국의 꽃을 꺾던
환상의 여왕도 그림자를 감추었습니다
아아 님 생각의 금실과 환상의 여왕이 두 손을 마주잡고
눈물의 속에서 정사(情死)한 줄이야 누가 알아요
우주는 죽임인가요
인생은 눈물인가요
인생이 눈물이면
죽음은 사랑인가요
꽃싸움
당신은 두견화를 심으실 때에 “꽃이 피거든 꽃싸움하자”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 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나는 한 손에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한 손에는 흰 꽃수염을 가지고
꽃싸움을 하여서 이거는 것은 당신이라 하고 지는 것은 내가 됩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만나서 꽃싸움을 하게 되면
나는 붉은 꽃수염을 가지고 당신은 흰 꽃수염을 가지게 합니다.
그러면 당신은 나에게 번번이 지십니다
그것은 내가 이기기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나에게 지기를 기뻐하는 까닭입니다
번번이 이긴 나는 당신에게 우승의 상을 달라고 조르겠습니다
그러면 당신은 빙긋이 웃으며 나의 뺨에 입 맞추겠습니다
꽃은 피어서 시들어 가는데 당신은 옛 맹세를 잊으시고 아니 오십니까
꿈 깨고서
님이면 나를 사랑하련만은
밤마다 문 밖에 와서 발자취 소리만 내이고
한 번도 돌아오지 아니하고 도로 가니
그것이 사랑인가요
그러나 나는 발자취나마 님의 문 밖에 가 본 적이 없습니다
아마 사랑은 님에게만 있나 봐요
아아, 발자국 소리가 아니더면
꿈이나 아니 깨었으련마는
꿈은 님을 찾아가려고 구름을 탔었어요.
꿈이라면
사랑의 속박이 꿈이라면
출세의 해탈(解脫)도 꿈입니다
웃음과 눈물이 꿈이라면
무심(無心)의 광명도 꿈입니다
일체만법(一切萬法)이 꿈이라면
사랑의 꿈에서 불멸을 얻겠습니다
나는 잊고자
남들은 님을 생각한다지만
나는 님을 잊고자 하여요
잊고자 할수록 생각하기로
행여 잊을까하고 생각하여 보았습니다
잊으려면 생각하고
생각하면 잊히지 아니하니
잊지도 말고 생각도 말아 볼까요
잊든지 생각하든지 내버려 두어 볼까요
그러나 그리도 아니되고
?임없는 생각 생각에 님뿐인데 어찌하여요
구태여 잊으려면
잊을 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잠시 죽음 뿐이기로
남 두고는 못하여요
아아, 잊히지 않는 생각보다
잊고자 하는 그것이 더욱 괴롭습니다.
나룻배와 행인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당신은 흙발로 나를 짓밟습니다
나는 당신을 안고 물을 건너갑니다
나는 당신을 안으면 깊으나 얕으나 급한 여울이나 건너갑니다
만일 당신이 아니 오시면 나는 바람을 쐬고
눈비를 맞으며 밤에서 낮까지 당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당신은 물만 건너면 나를 돌아보지도 않고 가십니다 그려
그러나 당신이 언제든지 오실 줄만은 알아요
나는 당신을 기다리면서 날마다 날마다 낡아갑니다
나는 나룻배
당신은 행인
나의 길
이 세상에는 길도 많기도 합니다
산에는 돌길이 있습니다 바다에는 뱃길이 있습니다
공중에는 달과 별의 길이 있습니다
강가에서 낚시질하는 사람은 모래 위에 발자취를 내입니다
들에서 나물 캐는 여자는 방초(芳草)를 밟습니다
악한 사람은 죄의 길을 좇아갑니다
의(義) 있는 사람은 옳은 일을 위하여는 칼날을 밟습니다
서산에 지는 해는 붉은 놀을 밟습니다
봄 아침의 맑은 이슬은 꽃머리에서 미끄럼 탑니다
그러나 나의 길은 이 세상에 둘밖에 없습니다
하나는 님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죽음의 품에 안기는 길입니다
그것은 만일 님의 품에 안기지 못하면
다른 길은 죽음의 길보다 험하고 괴로운 까닭입니다
아아 나의 길은 누가 내었습니까
아아 이 세상에는 님이 아니고는 나의 길을 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길을 님이 내었으면 죽음의 길은 왜 내셨을가요.
눈물
내가 본 사람가운데는
눈물을 진주라고 하는 사람처럼 미친 사람은 없습니다
그 사람은 피를 홍보석이라고 아는
사람보다도, 더 미친 사람입니다
그것은 연애에 실패하고 흑암의 기로에서 헤매는
늙은 처녀가 아니라면, 신경이 기형적으로 된 시인의 말입니다
만일 눈물이 진주라면 나는 님의 신물(信物)로 주신
반지를 내놓고는, 세상의 진주라는 진주는
다 티끌 속에 묻어 버리겠습니다
나는 눈물로 장식한 옥패를 보지 못하였습니다
나는 평화의 잔치에 눈물의 술을 마시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다
내가 본 사람 가운데는
눈물을 진주라고 하는 사람처럼 어리석은 사람은 없습니다
아니어요. 님이 주신 눈물은 진주 눈물이어요
나는 나의 그림자가 나의 몸을 떠날 때까지
님을 위하여 진주 눈물을 흘리겠습니다
아아, 나는 날마다 날마다 눈물의 선경(仙境)에서,
님의 손길
님이 사랑은 강철을 녹이는 물보다도 뜨거운데
님이 손길은 너무 차서 한도가 없습니다
나는 이 세상에서 서늘한 것도 보고 찬 것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님의 손길같이 찬 것은 볼 수가 없습니다
국화 핀 서리 아침에 떨어진 잎새를 울리고
오는, 가을 바람도 님의 손길보다는 차지 못합니다
달이 작고 별에 뽈나는 밤에, 얼음 위에 쌓인 눈도
님의 손길보다는 차지 못합니다
나의 작은 가슴에 타오르는 불꽃은
님의 손길이 아니고는 끄는 수가 없습니다
님이 손길의 온도를 측량할만한 한란계는
나의 가슴밖에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님의 사랑은 불보다도 뜨거워서, 근심 (山)을 태우고 한(恨)바다를 말리는데
님의 손길은 너무도 차서 한도가 없습니다.
님의 얼굴
님의 얼굴이 어여쁘다고 하는 말은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
어여쁘다는 말은 인간 사람의 얼굴에 대한 말이요
님은 인간의 것이라고 할 수가 없을 만치 어여쁜 까닭입니다
자연은 어찌하여 그렇게 어여쁜 님을 인간으로 보냈는지
아무리 생각하여도 알 수가 없습니다
알겠습니다. 자연의 가운데에는 님의 짝이 될 만한 무엇이 없는
까닭입니다
님의 입술 같은 연꽃이 어디 있어요
님의 살빛 같은 백옥이 어디 있어요
봄 호수에서 님의 눈결 같은 잔물결을 보았습니까
아침볕에서 님의 미소 같은 방향을 들었습니까
천국의 음악은 님의 노래의 반향입니다
아름다운 별들은 님의 눈빛의 화현입니다
아아, 나의 님은 그림자여요
님은 님의 그림자밖에는 비길 만한 것이 없습니다
님의 얼굴을 어여쁘다고 하는 말은 적당한 말이 아닙니다
님의 침묵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
푸른 산빛을 깨치고 단풍나무 숲을 향하여 난 작은 길을 걸어서 차마 떨치고 갔습니다
황금의 꽃같이 굳고 빛나던 옛 맹서는 차디찬 티끌이 되어서 한숨의 미풍에 날아갔습니다
날카로운 첫 키스의 추억은 나의 운명의 지침을 돌려놓고 뒷걸음쳐서 사라졌습니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사랑도 사람의 일이라 만날 때에 미리 떠날 것을 염려하고 경계하지 아니한 것은
아니지만 이별은 뜻밖의 일이 되고 놀란 가슴은 새로운 슬픔에 터집니다
그러나 이별은 쓸데없는 눈물의 원천을 만들고 마는 것은
스스로 사랑을 깨치는 것인 줄 아는 까닭에
걷잡을 수 없는 슬픔의 힘을 옮겨서 새 희망의 정수박이에 들어부었습니다
우리는 만날 때에 떠날 것을 염려하는 것과 같이 떠날 때에 다시 만날 것을 믿습니다
아아 님은 갔지마는 나는 님을 보내지 아니하였습니다
제 곡조를 못 이기는 사랑의 노래는 님의 침묵을 휩싸고 돕니다.
당신을 보았습니다
당신이 가신 뒤로 나는 당신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까닭은 당신을 위하느니보다 나를 위함이 많습니다
나는 갈고 심을 땅이 없으므로 추수가 없습니다
저녁거리가 없어서 조나 감자를 꾸러 이웃집에 갔더니
주인은 ‘거지는 인격이 없다. 인격이 없는 사람은 생명이 없다.
너를 도와주는 것은 죄악이다‘고 말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돌아 나올 때에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당신을 보았습니다
나는 집도 없고 다른 까닭을 겸하여 민적(民籍)이 없습니다
‘민적 없는 자는 인권이 없다.
인권이 없는 너에게 무슨 정조냐’하고
능욕하려는 장군이 있었습니다
그를 항거한 뒤에, 남에게 대한 격분이 스스로의 슬픔으로
화하려는 찰나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아아! 온갖 윤리, 도덕, 법률은 칼과 황금을 제사지내는
연기인 줄 알았습니다
영원의 사랑을 받을까
인간 역사의 첫 페이지에 잉크 칠을 할까
술을 마실까 망설일 때에 당신을 보았습니다.
선사의 설법
나는 선사의 설법을 들었습니다
‘너는 사랑의 쇠사슬에 묶여서 고통을 받지 말고 사랑의 줄을 끊어라
그러면 너의 마음이 즐거우리라’고 선사는 큰소리로 말하였습니다
그 선사는 어지간히 어리석습니다
사랑의 줄에 묶인 것이 아프기는 아프지만 사랑의 줄을 끊으면
죽는 것보다도 더 아픈 줄을 모르는 말입니다
사랑의 속박은 단단히 얽어매는 것이 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러 대해탈(大解脫)은 속박에서 얻는 것입니다
님이여, 나를 얽은 님의 사랑의 줄이 약할까 봐서
나의 님을 사랑하는 줄을 곱드렸습니다
심우장(尋牛莊) 1
잃은 소 없건마는
찾을 손 우습도다
만일 잃을시 분명타 하면
찾은들 지닐소냐
또 잃지나 않으리라
심우장(尋牛莊) 2
선(禪)은 선(禪)이라고 하면 선(禪)이 아니다
그러나 선(禪)이라고 하는 것을 떠나서 별로히 선(禪)이 없는 것이다
선(禪)이 아니면서도 선(禪)인 것이 이른바 선(禪)이다
...... 달빛이냐?
갈꽃이냐?
흰모래 위에 갈매기냐?
심우장(尋牛莊) 3
소 찾기 몇 해런가
풀기이 어지럽구야
북이산 기슭 안고
해와 달로 감돈다네
이 마음 가시잖으면
정녕코 만나오리
찾는 마음 숨는 마음
서로 숨박꼭질 할제
골 아래 흐르는 물
돌길을 뚫고 넘네
말없이 웃어내거든
소 잡은 줄 아옵소라.
알 수 없어요
바람도 없는 공중에서 수직의 파문을 내이며
고요히 떨어지는 오동잎은 누구의 발자취입니까,
지리한 장마 끝에 서풍이 몰려가는
무서운 검은 구름의 터진 틈으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은 누구의 얼굴입니까
꽃도 없는 깊은 나무에 푸른 이끼를 거쳐서 옛 탑 위의
고요한 하늘을 스치는 알 수 없는 향기는 누구의 입김입니까
근원을 알지도 못할 곳에서 돌부리를 울리고
가늘게 흐르는 작은 시내는 굽이굽이 누구의 노래입니까
연꽃 같은 발꿈치로 가이 없는 바다를 밟고 옥 같은 손으로
끝없는 하늘을 만지면서 떨어지는 해를 곱게 단장하는
저녁놀은 누구의 시입니까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
칠석(七夕)
“차라리 님이 없이 스스로 님이 되고 살지언정 하늘 위의 직녀성은 되지 않겠어요
네 네” 나는 언제인지 님의 눈을 쳐다보며 조금 아양스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말은 견우의 님을 그리우는 직녀가 일년에 한 번씩 만나는
칠석을 어찌 기다리나 하는 동정의 저주였습니다
이 말에는 나의 모란꽃에 취한 나비처럼 일생을
님의 키스에 바쁘게 지내겠다는 교만한 맹세가 숨어있습니다
아아 알 수 없는 것은 운명이요 지키기 어려운 것은 맹세입니다
나의 머리가 당신의 팔위에 도리질을 한 지가
칠석을 열 번이나 지나고 또 몇 번을 지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를 용서하고 불쌍히 여길 뿐이요 무슨 복수적 저주를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밤마다 밤마다 은하수를 새에 두고 마주 건너다보며 이야기하고 놉니다
그들은 해쭉해쭉 웃는 은하수의 강안(江岸)에서
물을 한줌씩 쥐어서 서로 던지고 다시 뉘우쳐 합니다
그들은 물에다 발을 잠그고 반 비슥이 누워서 서로 안보는 체하고 무슨 노래를 부릅니다
그들은 갈잎으로 배를 만들고 그 배에다 무슨 글을 써서
물에 띄우고 입김으로 불어서 서로 보냅니다.
그리고 서로 글을 보고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잠자코 있습니다
그들은 돌아갈 때에는 서로 보고 웃기만 하고 아무 말도 아니합니다
지금은 칠월칠석날 밤입니다
그들은 난초 실로 주름을 접은 연꼬의 웃옷을 입었습니다
그들은 한 구슬에 일곱 빛나는 계수나무 열매의 노리개를 찼습니다
키스의 술에 취할 것을 상상하는 그들의 뺨은
먼저 기쁨을 못 이기는 자기의 열정에 취하여 반이나 붉었습니다
그들은 오작교를 건너갈 때에 걸음을 멈추고 웃옷의 뒷자락을 검사합니다
그들은 오작교를 건너서 서로 포옹하는 동안에 눈물과 웃음의 순서를 잃더니
다시금 공경하는 얼굴을 보입니다
아아 알 수 없는 것이 운명이요 지키기 어려운 것은 맹세입니다
나는 그들의 사랑이 표현인 것을 보았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그들은 나의 사랑을 볼 수는 없습니다
사랑의 신성(神聖)은 표현에 있지 않고 비밀에 있습니다
그들이 나를 하늘로 오라고 손짓을 한데도 나는 가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칠월칠석날 밤입니다
하나가 되어 주세요
님이여,
나의 마음을 가져가려거든 마음을 가진 나에게서 가져가셔요
그리하여 나로 하여금 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셔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에게 고통만 주지 마시고 님의 마음을 다 주셔요
그리고 마음을 가진 님에게서 나에게 주셔요
그래서 님으로 하여금 나에게서 하나가 되게 하셔요
그렇지 아니하거든 나의 마음을 돌려 주셔요
그리고 나에게 고통을 주셔요
그러면 나는 나의 마름을 가지고 님이 주시는 고통을
사랑하겠습니다
행복
나는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합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
당신의 행복을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말로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미워하겠습니다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하는 마음의 한 부분입니다
그러므로 그 사람을 미워하는 고통도 나에게는 행복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미워한다면
나는 그 사람을 얼마나 미워하겠습니까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지도 않고 미워하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나의 일생에 견딜 수 없는 불행입니다
만일 온 세상 사람이 당신을 사랑하고자 하여
나를 미워한다면 나의 행복은 더 클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나를 미워하는 원한의 두만강이 깊을수록
나의 당신을 사랑하는 행복의 백두산이 높아지는 까닭입니다
해당화
당신은 해당화가 피기 전에 오신다고 하였습니다
봄은 벌써 늦었습니다
봄이 오기 전에는 어서 오기를 바랐더니
봄이 오고 보니 너무 일직 왔나 두려워합니다
철모르는 아이들은 뒷동산에 해당화가 피었다고
다투어 말하기로 듣고도 못 들은 체하였더니
야속한 봄바람은 나는 꽃을 불어서 경대 위에 놓입니다 그려
시름없이 꽃을 주워서 입술에 대고 ‘너는 언제 피었니’하고 물었습니다
꽃은 말도 없이 나의 눈물에 비쳐서 둘도 되고 셋도 됩니다
지는 해
지는 해는
성공한 영웅의 말로(末路) 같이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창창한 남은 빛이
높은 산과 먼 강을 비치어서
현란한 최후를 장식하더니
홀연히 엷은 구름의 붉은 소매로
뚜렷한 얼굴을 슬쩍 가리며
결별의 미소를 띄운다
큰 강의 급한 물결은 만가(輓歌)를 부르고
뭇산의 비낀 그림자는 임종의 역사를 쓴다 |
'문학 > 유명 시인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감자와 그밖의 것들에게 /류시화 (0) | 2011.06.08 |
---|---|
편강렬의사가 신의주 감옥에서 지은 시 (0) | 2011.06.08 |
별 헤는 밤 윤동주 (0) | 2011.06.08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 (0) | 2011.06.08 |
비 /원태연 (0) | 2011.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