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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유명 시인의 시

정채봉 시 모음

by 이태일, 태라라 2013. 7.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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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길상사 다닥다닥 꽃눈 붙은 잔나무가지를 길상사 스님께서 보내주셨습니다 퇴근하면서 무심히 화병에 꽂았더니 길상사가 진달래로 피어났습니다 * 바보 잠든 아기를 들여다본다 아기가 자꾸 혼자 웃는다 나도 그만 아기 곁에 누워 혼자 웃어 본다 웃음이 나지 않는다 바보같이 바보같이 웃음이 나지 않는다 * 영덕에서 푸른 바다를 보고 있다가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서 얼른 하늘로 고개를 젖혔다 아 하늘 역시도 푸르구나 내 눈물도 푸를 수밖에 없겠다 * 맛을 안다 눈물 젖은 밥맛을 안다 잠깐 눈을 붙인 단잠 맛을 안다 혼자 울어 본 눈물 맛을 안다 자살을 부추기던 유혹 맛을 안다 1분, 1원, 그 작은 단위의 거룩한 맛을 안다 흥하게 하고 망하게 하는 사람 맛을 안다 * 그땐 왜 몰랐을까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이었던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기다리는 것만으로도 내 세상이었던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절대 보낼 수 없다고 붙들었어야 했던 것을 그땐 왜 몰랐을까 * 꽃밭 하늘나라 거울로 본다면 지금 내 가슴속은 꽃으로 만발해 있을 것이다 너를 가슴 가득 사랑하고 있으니... *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모래알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풀잎 하나를 보고도 너를 생각했지 너를 생각하게 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없어 너를 생각하는 것이 나의 일생이었지 * 참깨 참깨를 털듯 나를 거꾸로 집어들고 톡톡톡톡톡 털면 내 작은 가슴속에는 참깨처럼 소소소소소 쏟아질 그리움이 있고 살갗에 풀잎 금만 그어도 너를 향해 툭 터지고야 말 화살표를 띄운 뜨거운 피가 있다 * 콩씨네 자녀 교육 광야로 내보낸 자식은 콩나무가 되었고 온실로 들여보낸 자식은 콩나물이 되었고 * 하늘꽃은 무얼 먹고 피는가? 신은 지상의 삶을 살러 나서는 사람들 마음마다에 꽃씨 하나씩을 심어서 보낸다 그러나 돌아오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에 꽃밭을 가득 일궈서 오는 사람은 어쩌다 보일 뿐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마음에 잡초만 무성해서 돌아온다 신이 이제 막 도착한 잡초마음한테 물었다 "너는 왜 네 꽃 씨앗을 말라죽게 하였느냐?" 잡초마음이 대답했다 "돈과 지위가 꽃거름인 줄 알았더니 이렇게 잡초만 무성케 할 줄은 몰랐습니다." 신이 침묵하고 있자 잡초마음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제 뒤의 사람들을 위하여 한 말씀 해 주십시오. 어떤 것이 하늘꽃을 키우는 거름입니까?" 신의 대답은 간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것." * 세상사 울지마 울지마 이세상의 먼저 섞인 바람 먹고 살면서 울지 않고 다녀간 사람은 없어 세상은 다 그런거야 울지 말라니까 * 엄마가 휴가를 나온다면 하늘나라에 가 계시는 엄마가 하루 휴가를 얻어 오신다면 아니 아니 아니 아니 반나절 반시간도 안 된다면 단 5분 그래, 5분만 온대도 나는 원이 없겠다 얼른 엄마 품속에 들어가 엄마와 눈맞춤을 하고 젖가슴을 만지고 그리고 한 번만이라도 엄마! 하고 소리내어 불러보고 숨겨놓은 세상사 중 딱 한가지 억울했던 그 일을 일러바치고 엉엉 울겠다 * 엄마 꽃은 피었다 말없이 지는데 솔바람은 불었다가 간간이 끊어지는데 맨발로 살며시 운주사 산등성이에 누워 계시는 와불님의 팔을 베고 겨드랑이에 누워 푸른 하늘을 바라본다 엄마... * 오늘 꽃밭을 그냥 지나쳐 왔네 새소리에 무심히 응대하지 않았네 밤하늘의 별들을 세어보지 않았네 친구의 신발을 챙겨주지 못했네 곁에 계시는 하느님을 잊은 시간이 있었네 오늘도 내가 나를 슬프게 했네 * 기도 쫓기는 듯이 살고 있는 한심한 나를 살피소서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책 한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돌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 노란 손수건 병실마다 밝혀 있는 불빛을 본다 환자들이 완쾌되어 다 나가면 저 병실의 불들은 꺼야 하겠지 감옥에 죄수들이 없게 되면 하얀 손수건을 건다던가 병실에 환자들이 없게 되면 하늘색의 파란 손수건을 걸까 아니 내 가슴속 미움과 번뇌가 다 나가서 텅 비게 되면 노란 손수건을 올릴까 보다 * 슬픈 지도 사랑하는가? 눈물의 강이 어디로 흐르는지 슬픈 지도를 가지게 될 것이다 * 내 안의 너 내 키의 머리 끝자리까지 내 몸무게의 소수점 끝자리까지 가득가득 차서 출렁거리는 내 안의 너 * 나무의 말 소녀가 나무에게 물었다 "사랑에 대해 네가 알고 있는 것을 들려다오" 나무가 말했다 "꽃 피는 봄을 보았겠지?" "그럼" "잎 지는 가을도 보았겠지?" "그럼" "나목으로 기도하는 겨울도 보았겠지?" "그럼" 나무가 먼 산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렇다면 사랑에 대한 나의 대답도 끝났다" * 수건 눈 내리는 수도원의 밤 잠은 오지 않고 방안은 건조해서 흠뻑 물에 적셔 널어놓은 수건이 밤 사이에 바짝 말라버렸다 저 하잘것 없는 수건조차 자기 가진 물기를 아낌없이 주는데 나는 그 누구에게 아무것도 주지 못하고 켜켜이 나뭇가지에 쌓이는 눈송이도 되지 못하고 * 기다림 산사의 돌확에 물이 넘쳐서 포갠 하늘조차 넘쳐 흐르네 너를 기다리는 지금 * 꽃잎 새한테 말을 걸면 내 목소리는 새소리 꽃한테 말을 걸면 내 목소리는 꽃잎 * 어느 가을 물 한방울도 아프게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며 잠자리에 듭니다 내일 아침에는 새하얀 서리가 왔으면 좋겠습니다 * 몰랐네 시원한 생수 한 잔 주욱 마셔보는 청량함 오줌발 한 번 좔좔 쏟아보는 상쾌함 반듯이 천장을 바라보고 누워보는 아늑함 딸아이의 겨드랑을 간지럽혀서 웃겨보고 아들아이와 이불 속에서 발싸움을 걸어보고 앞서거니뒤서거니 엉클어져서 달려보는 아, 그것이 행복인 것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네 이 하잘것 없는 범사에 감사하라는 깊고도 깊은 말씀을 예전에는 미처 몰랐네 * 사람과의 관계에 대하여 모든 사람들을 좋아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자신을 괴롭히지 마셔요 노력해도 좋아할 수 없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요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좋아해야 한다는 욕심으로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마셔요 모든 이가 당신을 좋아할 수는 없는 법이랍니다 내가 마음을 바꿀 수 밖에는 * 눈 오는 한낮 그립지 않다 너 보고 싶지 않다 마음 다지면 다질수록 고개 젓는 저 눈발들... * 사랑을 위하여 사랑에도 암균이 있다 그것은 의심이다 사랑에도 항암제가 있다 그것은 오직 믿음 * 들녘 냉이 한 포기까지 들어찰 것은 다 들어찼구나 네잎클로버 한 이파리를 발견했으나 차마 못 따겠구나 지금 이 들녘에서 풀잎 하나라도 축을 낸다면 들의 수평이 기울어질 것이므로 * 생명 비 갠 뒤 홀로 산길을 나섰다 솔잎 사이에서 조롱조롱 이슬이 나를 반겼다 "오!" 하고 나도 모르게 손뼉을 쳤다 그만 이슬방울 하나가 톡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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